간판이라는게 한국을 나오면 별로 중요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매한가지이다.

선진국에서 일하는 사람과 후진국에서 일하는 사람. 해외취업을 하더라도 어떤 국가에서 일하냐에 따라 다른 취급을 당한다. 웃기는 일이다. 특히 한국사람들에게선 더욱이 차별을 당한다. 해외에서 거주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주로 차별적인 언사를 듣지만, 해외취업이나 거주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종종 모욕적인 비교를 하곤 한다.



최근 한국에서 가족사진을 촬영하는데, 사진작가 왈.

"따님은 지금 어디 사셔요?"
"저는 말레이시아에서 일해요"
"아 거기서 무슨일 하시는데요?"
"디지털 마케팅 하고있어요"
"아 왜 거기까지가서 그런일을 하시나 ㅎㅎ"

그 작가가 말한 '거기까지'는 당연히 동남아시아 국가인 말레이시아를 비하하는 표현이었을테고, '그런일'이라는건 또 뭐지. 내가 내 손 더럽혀가면서 이상한 일을 하는것도 아니고 말야. 

미국에서 인턴십 경험이 있고, 그 뒤에 한국 스타트업에서 일을 한 이후에 말레이시아에서 계속 커리어를 쌓고 있다는 배경을 알고나면 다들 묻는다. '왜 미국에서 취업 안하시고...'

미국에서 취업. 말이야 좋다. 비자 스폰서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인턴으로 일하던 회사에서 비자 스폰서를 받기로 하고 H1B 프로세스를 밟으려고 했었다. 당시 내가 미국에서 연봉으로 받을 수 있었던 금액? 3~4만불 남짓. 한달이면 세금을 제하고 2800불 정도 받을 수 있을까? 원 베드룸은 고사하고 스튜디오 유닛을 빌리려면 최소 2000불은 있어야한다. 방만 빌려서 살더라도 유틸을 제외하고 1000불. 유틸에 생활비에 쓰고나면 수중에 남는 돈이 있긴 하려나.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디지털 마케팅. 지금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회사들의 디지털 마케팅 캠페인을 컨설팅한다. 하루 예산이 수천만원 수억을 오간다. 미국이나 선진국이었다면 이런 기회를 쉽게 얻을 수 있었을까? (아니, 지금 경력에서는 한국에서도 어려웠으리라.) 물론 여기서도 손쉽게 얻은 기회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영어도 완벽하지 않지만, 여기 사람들이라고 완벽할까. 언어나 인종으로 무시당할 일도, 유리천장에 허덕일 일도 없다. 

이직할 때는 비교우위를 훨씬 더 실감했다. 꿈도 꿔보지 못할만한 글로벌 기업들에서 파이널 오퍼를 받기도 하고, 내 손으로 거절도 여러차례. 문송하다는 말이 익숙한 한국 중위권 대학출신 문돌이가, 경영대 전공도 아닌 취업 최하위 과를 나오고, 흔한 MOS나 기타 자격증도 없이 내로라하는 기업에 resume를 들이민다. 말레이시아에 오지 않았다면 지원이라도 해볼 깜냥이나 됐을까.

무엇보다 이곳에서 느끼는 가장 큰 장점은 삶의 질이 크게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야외 수영장에 헬스장에 이런저런 편의시설이 포함된 콘도에 사는 것도 그렇고, 같은 생활비로 훨씬 수준 높은 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것도. 동남아 여행이 훨씬 쉬워진 것은 입아프게 말해 무엇하랴. 이런 걸 다 하면서도 저금까지 가능하다. 오히려 요즘엔 미국에서 취업하지 않았던 게 전화위복이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지금은 말레이시아에 살고 있지만 뭐 평생 여기 살란 법이 있나. 나는 아직 젊고, 기회는 항상 있다고 믿는다. 열폭이라고 느끼건 말건 나는 하루, 한시간, 1분마다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