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일을 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단점은 

'같은 일을 하면서 다른 월급을 받는다' 정도일까.


물론 이런 일은 한국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특히 뭣같은것이 '2년제'를 나왔냐 '4년제'를 나왔냐에 따라서 급여가 달라지는 것? 여기에는 '나는 4년동안 돈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2년제 친구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 라는 전제가 깔려있을 수 있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2년제 대학졸업자, 고등학교 졸업장만 가지고 있는 소위 '고졸' 친구들은 4년제 학위취득자에 비해 급여가 적다. 승진제한선도 당연히 있고, 일을 아무리 잘해도 4년제 친구들에 비해 낮은 임금을 받는 경우가 다반사.


그런데 여기서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그것도 더 안좋은 쪽으로. 같은 회사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면서, 단지 '어떤 나라'에서 왔느냐에 따라서 급여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물론 그 나라 그 시장에 맞는 임금을 주어야만 해외근로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인지라, 같은 사무실 안, 같은 직급에, 거의 비슷한 일을, 같은 조건(사무실, 근무시간, 업무의 분량 등) 에서 하면서 적게는 1.5배에서 많게는 2~3배의 급여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고' 근무한다는 건 얼마나 스트레스일지. 물론 그 사람이 받는 성과급 여부에 따라 급여차이가 줄어들 수도 있으나, 애초에 기본급이 2배 차이가 나면 그것도 어려울거다.


말레이시아에서 한국인은 현지인보다 급여를 많이 받는다. 비자 규정때문도 있겠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란 콧대높으신 외국인근로자님들을 모시기 위해서는 어느정도의 급여를 제시해야만 말레이시아로 데려올 수 있을거다.


나의 경우에도 그렇다. 내가 취업을 할 때도, 내가 인터뷰를 볼 때도, 한국에서 근무할 때보다 적은 임금을 감수해가며, 심지어 25%(당시 말레이시아에 넘어올때는 25%였음, 현재는 28%)라는 소득세를 감수해가며 이 나라에 와야하는가. 어찌저찌 성과급 란을 얼마정도 올리기로 협상을 했다. 게다가 내가 처음 불렀던 희망급여(...)는 여기서 매니저급 레벨에서도 15년이상을 일해야 받을까말까 한 금액이었다. 주니어 레벨에서 그런 과장, 팀장급 급여를 운운하고 있었으니 나랑 연봉협상 하던 현지 HR팀 직원은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말레이시아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던 나는 그런 건방진 얘기를 했더란다. (놀란 HR의 메일을 받고, 내가 한국에서 받던 금액인데 왜, 하면서 콧방귀를 꼈다.) 하지만 그렇게 높게 부르길 잘 한 것이 연봉협상에 성공해(물론 그 금액 다 받지 못함) 나는 말레이시아 월급에 그래도 만족하고 있다는것...?


그런데 실제로 이 나라에 와보니 상황이 전혀 달랐다. 내가 받는 월급은 현지 대졸자의 2배가 훨씬 넘는 금액이고, 게다가 성과급까지 받으면 그 차이는 정말 엄청나졌다. 내가 만약, 한국에서 같은 일은 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나의 2.5~3배를 벌어가는, 이런 취급(?)을 받았더라면 과연 그 회사에서 오래 일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이 회사에서는 다른 마켓, 다른 직원들. 심지어 같은 나라의 사람들에게도 급여공개를 절대 서로 하지 않는다. (같은 국가에서 왔더라도 급여차이가 날 수 있다.) 대충 Jobstreet이나 linkedin같은 공고를 보고, 혹은 씀씀이를 보고 어림짐작 할 뿐이다.


요새 다른나라 친구들이랑도 어느정도 친해지고, 이야기를 하다보니... 이런 어려움이 있겠구나 싶다. 이유인즉슨 한국인(+일본인)이 월급을 제일 많이 받아가는 아시아국가 외국인근로자이기 때문이다.... 그들도 말레이시아에 일정부분 희생을 감수하며 넘어왔을 것이고, 여기서 힘든 점을 참아가며 일을 하고 있을텐데. 거의 비슷한 일을 하며, 같은 직급인데도 단순히 다른나라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들보다 2000~3000링깃은 더 받아가는 걸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그러나 그들의 사정은 논외로 하고, 말레이시아에 오는 한국인들이 '원래 한국인은 이정도 받아요'하는 얘기에 혹해 적은 금액의 근로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근무경력이 전혀 없고, 본인의 전문성이 떨어져 이 금액도 고맙습니다 하고 오는 사람이라면 내가 신경쓸 부분은 아니지만. 나도 만약 근로계약서를 받아들고 나의 희망급여를 제시했을 때, 급여를 후려치는 HR의 말만 믿고 '네네 알겠습니다' 라고 연봉을 깎아내려갔다면 이 일을 계속 하고싶지는 않았을것 같다. 사실 그 때의 나는 말레이시아에 올 생각이 크게 없었기 때문에, 니들이 내가 필요하면 이정도는 해줘야 가겠다 하고 배짱을 부렸던 것도 있었다. 게다가 같은 분야에서 근무도 했었고, 한국에서 일을 했었기 때문에 시장상황도 알고 있었고, 인터뷰 과정에서도 느꼈지만 내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본인의 임금이 이정도이기 때문에 다른사람의 급여를 후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점이다. 본인이 100만원 번다고, 다른사람도 100만원만 벌 이유는 없다. 그사람이 나보다 더 잘났으면 200도 300도 벌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상황은 이렇기 때문에 너는 그게 배짱부리고 건방진 소리야. 너가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래'라고 훈계하는 것은 도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쳤다. 게다가 그를 공론화 하는 것은 공개적으로 그 사람을 철없고 건방진 사람으로 내몰아세우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못됐다. 내 호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것도 아닌데 나보다 어리고 경력없는 네가 돈을 나보다 많이 받으면 내 배알이 꼴려서 안된다는 논리라면, 그냥 철없고 어린 이의 치기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거나, 그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일러주면 된다.


일하다보니, 말레이시아에서 일하는 한국인 중에서도 내가 기본급이 높다는 걸 눈칫밥으로 알게 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계약서에 사인할때만은 호구잡히지 말자. 성격상 네네 알겠습니다. 하라면 해야죠. 이렇게 일을 처리하는 답답이 st였지만, 그 때 그렇게 건방지게(?) 굴었던 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말은 해도, 말레이시아에서 계속 오래 살면서 근무해야하는지 요즘 고민이 많다. 1년만 채우고 다른 나라로 옮겨야하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들고있다.


그리고 요새 일이 아주 바빠져서... 회사에서 집에 오면 피곤해서 쓰러지다보니 블로그를 신경쓸 겨를도 없었다. 그동안 푸켓도 갔다오고 세부도 갔다왔는데, 전혀 포스팅을 못하고있다. 넘쳐나는 외장하드를 정리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