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작년 한 해는 정말 잊을 수 없는 1년이 아니었나 싶다.그리고 그 1년에서 느낀 점이 있다. 

사시사철(?아 철이 없지) 뛸 수 있는 게 행복. 

첫번째,행복은 절대 밖에서 오지 않았다.

그 누구도, 무엇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나의 만족에서 오지 않는 단편적 즐거움은 찰나의 순간으로 그쳤다. 모든 것은 내 스스로 만족하는가. 그것이었다. 남을 보고 나의 행복을 결정지으려 하지 않아야한다. 남이 느끼는 행복의 요소가 나에게 똑같이 주어진다고 해도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두번째, 행복을 느끼는 요소들은 계속 변화한다.

나는 무엇 때문에 행복했는가. 기존에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던 것들이 시들해지고,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것들이 나를 즐겁게 한다. 예를 들면 마라톤. 운동은 거들떠도 보지 않던 내가, 1km도 달릴 수 없던 시절의 내가 지금의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마라톤 완주 개인 기록을 깨는 것이 한 해의 목표가 되는 걸 짐작이나 했나.

 

행복이 별거냐 제주도 은갈치에 엄마표 밥상이 행복이지.

세번째, 행복을 과시하면 만족감이 줄어든다.

어떤이는 본인의 물질적인 풍요나 정서적 안정을 끊임없이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한다. 나의 삶의 완벽과 거리가 멀면 멀수록 허점은 감추고 멋드러진 모습만 봐주기를 바랐다. 사실 내가 그랬다. '너 정말 잘 사네' '너의 삶은 멋져'라는 말을 듣는 것이 목표라도 된 것 같았다. 누군가가 나의 삶을 부러워하고 질투와 시기해주기를 원했다.

 

2018년 한 해를 살면서 느꼈다. 남의 불행에 빗대어 행복해지는 것, 남의 시기와 질투와 부러움을 먹고 자란 행복은 비뚤어졌다는 것. 행복의 과시는 결국 내 목을 조르는 행위였다. 내가 내 스스로 만족하고, 행복했으면 됐다. 그리고 그걸 내가 좋아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그럼 2019년의 나는 행복한가?

글쎄. 행복할 때도 있고, 행복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행복하든 그렇지 않든 불안하지 않다는 것. '지금은 행복하지 않아', 혹은 '나의 삶이 완벽하지는 않지'라고 인정할 수 있게 된 것.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된 것. 이것으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