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생활을 하면서 가장 우려해야할 부분 중 '적응'과 '융화'도 있지만, '자만'과 '삶의 전시'라는 부분도 분명 있다. 해외에서 멋지게 살아가는 나를 포장하기. 이것도 저것도 다 잘하는 나를 전시하기.


아무래도 해외생활이 점점 길어지다보니 해외생활을 하는 친구들을 많이 만나 어울리게 된다. 그런 관계들에서 지치고 회의감을 느껴갈 때 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와 비슷하게 해외생활을 하는 젊고 유능한 친구들 사이에서 왜 더 지치고 기운이 빠지고 힘든 걸까.' '그렇게 내가 찾고 어울리고싶어하던 만능이들인데. 그렇게 찾고싶어하던 커리어와 삶에 대한 열망이 넘치는 사람들인데.'


결론은 그들도 나와 같이 삶의 전시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내가 그들이 전시하고 싶어하는 부분만을 보려던 것일 수도. 어찌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순탄하고 즐거운 일만 있으랴. 그 속을 들여다보면 깊고 아픈 생채기가 가득인 걸. 아픈 사람들일수록 산전수전공중전 다 겪고 얻어낸 조그마한 보상을 빼앗기기가 두려운가보다. 아니면 예쁘게 포장해서 광을 내 전시해놨는데 겉포장을 벗기면 한없이 초라해 그 실체를 들키고싶지 않다거나.


해외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오고 간다. 내가 오고 가는 사람이 될 수도. 그들이 그럴 수도 있다. 지구를 돌아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더욱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 '도움을 받아도 갚지 않아도 되는 상대'로 여겨지는 것인지, 호의의자 격려로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건내준 것들을 1. 그냥 받고 튄다 2. 받은 적 없는 척한다 3. 베푼 호의가 공격으로 둔갑해 나를 찌른다. 와 같은 반응들이 나온다. 물론 내가 베푼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돌려주는 상대도 많고, 내가 전적으로 도움을 받고 있는 관계들도 많다.


외국 생활을 하면서 나는 '바깥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듯하다. 영영 내 '안 사람들'이 되지 못할 사람들. 내가 이런 저런 일화들을 겪으면서 나름대로 다짐한 것들이 있다.


1. 상대방의 사생활에 크게 관여하지 않을 것. 관여를 요구해도 적정선을 지킬 것.

2. 실제로 얼굴 마주보고 만나서 겪지 않은 사람을 판단하지 말 것.

3. 도움만을 요구하는 사람은 싹을 자를 것. (도와주고도 욕먹는다는게 참말이었다)

4. 새로운 관계에 대해 경계할 것.

5. 삶을 전시하는 사람/내 삶의 전시를 요구하는 사람과 어울리지 말 것.

6.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에 대해 무시하는 사람과 어울리지 말 것.


정말 매정하고 인간미 없어보이는 것들이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도 나를 잃어버릴 것 같다. 




나는 내 삶을 예쁘게 포장하지 않아도 나 자체로 행복하고, 풍족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은 '나를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나는 작고 사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다가도, 또 그런 사소한 것들에 한없이 작아지고 상처를 받기도 한다. 

나는 내가 가진 것들이 너무 크고 멋져보이다가도 성공한 다른 이에 비교해 보잘 것 없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는 도움을 주고 받는 것들이 너무 즐겁고 보람차다가도 그런 것들에 지치고 힘들어한다. 

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경계하지만,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데서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나에겐 좋은 점도 나쁜 점도 많다. 그것을 다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나에대한 이해가 시작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나에 대한 이해가 충분해야만,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내 삶을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다.